김응오
金應五1870. 11. 23 ~ 1949. 2.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수원군 일대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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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0년 11월 23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水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경기도 수원군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수원군 장안면 만세시위는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爀) 등이 장안면 석포리(石浦里) 이장 차병한(車炳漢) 등과 계획하여 일으킨 것이다. 이들은 1919년 4월 3일 오전 10시 장안면 어은리(漁隱里)의 장안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이때 마을 소사 이원준(李元俊)으로부터 “장안면·우정면사무소, 화수리주재소 등을 쳐부수고 순사를 죽이기로 되어 있어 이민(里民)은 모두 가기로 되어 있으니 몽둥이를 들고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장안면사무소로 갔다. 군중이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서류·집기를 불태우고 쌍봉산에 올라가자 이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우정면사무소로 가서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의자·서류 등을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한각리(閑角里)를 거쳐 화수리(花樹里)로 이동하였다. 4월 3일 오후 5시 다른 시위대와 함께 몽둥이를 들고 화수리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시위대 일부는 주재소 뒤에 불을 놓는 동시에 건물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때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면서 발안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그러자 주재소 동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까지 추격하여 시위 군중과 함께 돌과 몽둥이로 순사를 죽였다. 이후 1919년 4월 15일 수원경찰서에 다른 시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였고, 같은 해 8월 9일 경성지방법원은 보안법위반, 소요, 살인, 방화로 재판하여 공소불수리 판결을 내렸다. 결국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2년 6월을 받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주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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