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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경

金乙卿

1899. 4. 4 ~ 196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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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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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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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陰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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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4월 4일 충북 음성군(陰城郡) 소이면(蘇伊面) 중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이중곤(李重坤)·권재학(權在學)·추성렬(秋成烈)·이교필(李敎駜)·이용호(李龍浩) 등과 함께 음성군 소이면 한내(漢川)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 장터로 나가 수백 명의 군중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독립운동을 함이 마땅하다”고 연설하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이중곤과 함께 면장 민동식(閔東植)을 앞뜰로 끌어내 “너도 조선인이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이 마땅하며 만일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죽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이때 일경이 출동하여 이중곤과 함께 소이경찰주재소로 끌고갔다. 이에 분개한 시위 군중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문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며 격렬히 항의하였다. 권재학은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체포하느냐. 빨리 석방하라”고 외쳤고, 추성렬과 이교필은 “아무도 집에 돌아가지 말고 김을경과 이중곤의 구출에 진력하자”라고 외치며 군중의 기세를 올렸다. 이로 인해 붙잡혀 1919년 10월 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이해 7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자신이 한 행위는 타당하고, 인도 정의로 민족자결의 뜻을 나타낸 것에 대해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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