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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만

馬成萬

1909. 8. 29 ~ 1941.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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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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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군동소작회
  • · 삼신리 야학회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강진 군동소작쟁의
  • · 전남운동협의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8월 29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군동면(郡東面) 삼신리(三新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마자현(馬子炫)이다. 1926년 3월 강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2~3년간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1928~29년경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오사카(大坂)에서 지내다 1931년 귀향한 후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군동소작회 1924년 5월에 군동면에서 조직되어 소작료 감하를 지주에게 요구하는 활동을 하였다. 1931년 11월 초부터 소작문제를 토의하였고, 11월 16일 읍내에 있는 지주를 상대로 소작료 감하를 요구하는 동시에 도 당국에 사유서를 진정하였는데 이에 지주 측에서 불응하자 11월 28일 군동면의 2백여 명 소작인들이 가마다(鎌田)산업회사 목포지점 강진출장소에 몰려갔으며 회사를 포위하고 언쟁하던 중 난투극으로 이어져 회사 사무원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소작인 집행부 8명이 경찰에 검거되자 이에 분개하여 11월 29일 소작인들은 한밤중에 경찰서로 몰려가 ‘검거자 석방’, ‘소작료 감액’을 외치며 새벽토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일제는 군내 각 주재소 등 경찰력을 동원하여 진압에 나서 소작인들을 해산시키고 다시 60여 명을 검거하였을 때 붙잡혔다. 12월 9일 강진경찰서에서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으로 넘겼던 26명 중에 포함되어, 오원석(吳元錫)·장명환(張明煥)·김호기(金浩基) 등 14명과 함께 폭력 행위 위반과 상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되었다. 1932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폭력 행위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1933년 4월 사회주의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월 2~3회씩 삼산리 야학회(夜學會)에서 마홍렬(馬洪烈) 등 50여 명에게 농민계몽과 소작쟁의 및 농민권익보호 등의 항일 활동을 펼쳤다. 1933년 9월 4일 김호기(金浩基)·마상춘(馬相春)·조정구(趙政九)와 함께 조정구의 집에 모여 농민지도단체 설립을 협의하였고, 9월 29일 삼신리 마을 뒤편 송림(松林)에서 군동면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이러한 활동들로 인해 일제 경찰에 다시 붙잡혀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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