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선항
馬善恒1900. 11. 27 ~ 1950. 10.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성천지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00년 11월 27일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성천읍(成川邑) 하부리(下部里)에서 태어났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성천지부(成川支部)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8월 평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에서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이 단체를 주도한 사람은 기독교 장로인 박승명(朴承明)·윤종식(尹宗植)·김흥건(金興健) 등이었다. 8월 하순 평양에서 열린 성경공부 모임인 평남노회직분사경회(平南老會職分査經會)를 기회로 여기에 참석한 20여 명의 평남 지역 기독교 목사, 장로 등이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결성하였다. 이때 본부를 평양에 둘 것과 7개 지회를 설치하기로 결의하고 박인관(朴寅寬)을 임시회장으로 선출하였으며, 부회장은 정덕생(鄭德生), 총무는 박승명이 맡았다. 대한국민회는 회원의 회비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의 재정에 보탰다. 회원에게는 통상 1원에서 10원 정도의 회비를 거두었다. 1919년 9월 박승명은 대한국민회 성천지부를 만들기 위해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성천의 기독교 지도자인 정찬모(鄭燦模)를 찾아갔다. 여기에 성천장로교회(成川長老敎會) 조사(助師)인 이성윤(李成允)까지 가담하면서 셋이서 대한국민회 성천지부 결성을 준비하였다. 이후 이성윤은 평양에서 박승명을 다시 만나 대한국민회의 취지서와 규칙, 『독립신문』 4부를 받아 성천으로 돌아와 지부 설립 준비를 본격화하였다. 때마침 성천읍에서 장사를 하던 이춘삼(李春三) 등 3인이 이성윤을 찾아와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을 만들고자 하니 동참하길 바란다는 의사를 전하였다. 이에 이성윤은 대한국민회 성천지부 설립 준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이춘삼이 찬성하고 회원 모집에 나서면서부터 성천지부는 틀을 갖추어갔다. 이성윤이 여러 번 평양을 오가며 대한국민회 본부와 연락을 취하였고 회원증을 발부받아 회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통선리(通仙里)에 사는 천도교 신자 정동근(鄭東根)은 성천지부에 가담하여 부회장직을 맡으면서 100원을 제공하였다. 대한국민회 성천지부는 40여인의 회원을 확보한 후 조직을 정비하였다. 회장은 이성윤, 평의원은 이춘삼이 맡았다. 회계는 박명익(朴明翊)이 맡았는데 성천군청 관리였다. 외교교통은 황준목(黃晙穆)·김관옥(金觀玉)이 맡았다. 회원으로는 김병익(金炳益)·김용식(金用植)·김인식(金仁植)·박정칠(朴廷七)·김기화(金基化)·정동근·정찬모·이한주(李漢柱) 등이 참가하였다. 이때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성천지부에는 군참사(郡參事), 군서기(郡書記), 면장, 면서기, 금융조합 서기 등 관리들이 다수 참여하여 주목을 끌었다. 회원 대부분은 20대 청년들이었다. 성천지부에서는 10원 이상 100원 이상을 기부금을 모았다. 1919년 말에 대한국민회 평양본부가 경찰에 발각되면서 간부들이 체포되었다. 이후 대한국민회 지회들도 잇달아 발각되면서 검거 선풍이 불었다. 대한국민회 성천지부는 1920년 6월 조직이 발각되었다. 1920년 6월 관련자들과 함께 붙잡혀 그해 12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23년에는 성천에 있는 사립보성강습소(私立普成講習所)에서 삼산병원(三山病院)을 운영하는 이승록(李承祿)과 함께 매일 2~3시간을 보수없이 가르쳐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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