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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永濬

永濬

1922. 10. 13 ~ 199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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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盧永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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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용강(龍江)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용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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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삼천당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80)

관련 사건

  • · 일본군 평양사단 학병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80) 1922년 10월 13일 평안남도 용강군(龍江郡) 봉산면(鳳山面) 의산리(義山里, 현 옥도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1943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일제는 이른바 ‘조선인학도 육군특별지원병제도’라는 명목 하에 한국인 학생들을 강제로 전선에 배치하였다. 1944년 1월 19~20일에는 함경남북도·평안남북도 학생들을 징병하여 평양사단에 배치하였다. 이때 강제 징병되어 일본군 평양사단 47포병부대에 배치되었다. 평양사단은 평양 시내에서 약 8km 떨어진 추을(秋乙) 벌판에 자리 잡아 일명 ‘추을부대’라고 불렸는데, 42보병부대·43보병부대·44보병부대·47포병부대·48공병부대·50치중병부대 등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한국인 학병들은 부대 내에서 민족 차별은 물론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이에 1944년 7월경 평양사단 42보병부대의 학병 김완룡(金完龍)·박성화(朴性和)·최정수(崔正守)·전상엽(全相燁)·김윤영(金允永) 등을 중심으로 ‘삼천당(三千黨)’이라는 결사가 조직되어 의거가 계획되었다. 이들은 ‘①우리는 주의 사상을 초월하여 오직 3·1정신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원수 일본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②우리는 중지를 모아 직간접으로 일본 군부를 내부에서 교란하여 일본 패망을 추진한다. ③우리는 힘을 모아 무장봉기하고 사태가 여의치 못할 땐 백두산으로 들어간다. ④우리의 최종 목표는 오직 독립이요, 자치권이나 참정권 따위는 고려의 여지가 없다’라는 강령을 세우고 작전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47포병부대와 44보병부대, 48공병부대에 동지들을 확보하여 조직망을 확대하였다. 이에 뜻을 함께하여 학병들의 거사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작전계획이 준비되던 중 전상엽에 의해 일시에 봉기하여 평양사단을 폭파하자는 제의가 있었다. 그러나 폭약과 탄약의 입수 문제, 일본군의 반격을 고려하여 우선 부대를 탈출하여 한만국경(韓滿國境)지대와 부전고원(赴戰高原) 등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동시에 폭파하는 전략을 채택하였다. 거사일을 1944년 10월 1일로 정했으나 평양사단의 부전고원 기동훈련으로 한 달 뒤인 11월 1일로 연기하였다. 그러나 추을헌병대의 한국인 보조헌병 임영호(林永鎬)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병들은 헌병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다. 또 김완룡의 일본인 상등병을 구타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계기로 헌병대는 학병에 대해 대대인 검거를 시작하였다. 결국 70여 명의 학병들이 붙잡혔고, 이때 일본군 헌병대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1945년 6월 10일 평양군관구 임시군법회의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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