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炳柱
炳柱1905. 11. 15 ~ 1993. 6.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영덕소년회
- · 삼사소년회
- · 영덕청년회
- · 영덕여성친목회
- · 영덕청년동맹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905년 11월 15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 화개리(華開里)에서 태어났다. 집안 배경과 유년시절 수학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20년대 중반부터 영덕지역 청년운동 및 사회운동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1925년 12월 24일 영덕지역의 소년과 청년층 규합을 위한 영덕소년회(盈德少年會) 창립기성회가 조직되자 강충근(姜忠根)·정대보(鄭大寶)와 함께 회원 모집을 담당하였다. 1926년 6월 21일 영덕 삼사소년회(三思少年會) 정기총회에서 지도부 간부로 선출되어 농촌 부인에 대한 한글 속성 야학(夜學)강습을 결의하였다. 1927년 11월 서정자(徐貞子)·유웅경(劉熊慶) 등과 함께 영덕청년회(盈德靑年會)와 영덕여성친목회(盈德女性親睦會)에 야학부를 개설하였다. 영덕청년회 재무를 담당하여 이기석(李基錫)에게 2원을 제공하고 교재 제작용 종이 구입에 사용하였다. 이들은 영덕면 남석동(南石洞) 영덕청년회관에서 4일 동안 각종 신문을 조사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자유롭게 서로 조합(助合)하는 러시아의 생활」, 「국가와 조선」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잡지를 발간하였다. 1910~20년대 식민지 해방운동과 연계된 러시아 혁명을 독립운동의 추동력으로 활용하고 사회운동을 위한 의식을 각성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잡지 발간과 함께 한글 교과서 제작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 앞의 기사를 기재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 『조선문초도(朝鮮文初道)』라는 교과용 책자를 각 30부 출판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청년회관에서 약 2개월간 여성 야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를 통해 문맹(文盲) 대중에게 한글을 교육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1928년 1월 28일에 개최된 신간회 영덕지회(盈德支會) 2차 정기대회에서 소년운동을 함께 해온 김학순(金學順) 등과 함께 영덕지회 간사로 선임되었다. 동시에 3월 28일에 조직된 영덕청년동맹(盈德靑年同盟)의 서무재정부 위원과 상무위원을 역임하며 영덕지역 청년운동을 지도하였다. 이후에도 일본의 식민지 만행을 고발하고, 독립의식을 일깨우는 각종 잡지와 전단지를 만들다가 이기석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10월 16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경찰서 형사에게 사전 검열을 받은 사실 등을 근거로 혐의 적용의 부당성과 법리적 무죄 근거를 당당히 진술하였다. 그럼에도 출판법 위반으로 금고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9년 3월 3일에 이기석과 함께 대구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였다. 이후 영덕군 영덕읍에서 문화당사진관(文化黨寫眞館)을 운영하였으며 1931년 5월 영덕 시민을 위로하기 위한 영덕음악회(盈德音樂會)를 주선하는 등 지역 사회에 공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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