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明一
明一1926. 2. 28 ~ 1953. 8.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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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8) 1926년 2월 28일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현 구미시) 선산면 독동(禿洞)에서 아버지 노원엽(盧元燁)과 어머니 선산 김씨(善山金氏) 슬하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사국(士國), 호는 의산(義山)이다. 1940년 4월 대구공립직업학교(현 대구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942년 4월 졸업과 동시에 인천(仁川) 만석동(萬石洞)의 주식회사 조선기계제작소(朝鮮機械製作所)에 취직하였다. 1943년 7월경 대구(大邱) 출신의 같은 회사 기술고원(技術雇員)인 박태철(朴泰哲)로부터 문예지 발간을 제안 받았다. 민족의식 앙양을 위해 각자의 한글 문학작품을 모아 책을 만들자는 것으로, 다른 직원 임창빈(任昌彬)·이도열(李道烈)과 함께 찬성하여 문예지를 발간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10월 중순경 회사 사무실에서 4명이 협의하여 책자 명칭을 『목양(牧羊)』으로 결정하였다. “일제 강점하의 한국인은 놓아둔 양과 같은 상태이니, 양이 목자(牧者)의 지도를 따름과 같이 적당한 지도가 있다면 조국독립을 위해 궐기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아서였다. 11월 20일 각자의 민족의식을 담아낸 작품들을 실은 『목양』 제1호를 5부 만들어서 1권씩 나누어 가지고, 나머지 1권은 의목나병원(醫牧癩病院) 간호부 박효순(朴孝順)에게 배부하였다. 1944년 6월 박태철로부터 “미군기(美軍機)가 일본 기타큐슈(北九州)를 빈번하게 습격하고 있으니 피해가 증가하여 결국 일본은 패전하고, 그때 망명했던 자도 돌아와서 독립운동을 일으켜 조선은 독립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고무되었다. 이에 다시 원고를 모아 『목양』 제2호를 발간하려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7월 4일 인천형무소에 수감되어 1945년 3월 예심에서 불기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9개월 간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1949년 5월 29일 전라북도 옥구(沃溝)에서 열린 독립노농당(獨立勞農黨) 옥구당부(黨部) 제3회 대표대회에서 노농청년연맹勞(農靑年聯盟) 대표로 축사를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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