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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영

南太榮

1902. 7. 27 ~ 199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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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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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풍기(豊基)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풍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풍산소작인회 은풍출장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하리(은풍)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902년 7월 27일 경상북도 풍기군(豊基郡) 하리면(下里面, 현 예천군(醴泉郡) 은풍면(殷豊面)) 부초동(芙草洞)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부터 일제 식민통치의 현실적 모순이 지주제 확대와 강화로 인한 농촌문제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고 보고 농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5년 12월 4일 김영희(金永熙)와 『시대일보(時代日報)』 예천지국 기자 남병인(南炳寅)에 의해 안동(安東) 풍산소작인회(豐山小作人會)의 지부격인 은풍출장소가 하리면에 창립되자 바로 가입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소작료율 인하, 부역(賦役) 폐지, 지세(地稅)의 지주 부담 등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1926년 2월 초 일본인 지주 도요다 넨(豊田稔)이 은풍출장소 상무집행위원 이중기(李中基)의 아버지 이근희(李根熙)와의 소작계약을 갑자기 해지하고 친일 색채의 소작인상조회 회원 한순교(韓舜敎)에게 소작권을 넘겼다. 이에 약 5백여 명의 은풍출장소 회원들이 이근희의 소작지에 보리를 파종해서 한순교의 경작을 방해하는 식으로 쟁의를 벌였다. 풍산소작인회의 상무집행위원 이용만(李用萬) 을 비롯하여 이중기·남병인 등과 함께 이 쟁의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하여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검사국에 송치되어 1926년 8월 재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10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한편, 같은 해 2월 동아일보(東亞日報) 예천지국이 개설되면서 기자로 임명되었으나 구금과 투옥으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 사임하였다. 그 사이 은풍출장소는 1926년 9월 6일 은풍소작인회로 독립하였고, 1927년 5월 은풍농민회로 바뀌면서 조직이 확대되었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서 세장업(洗張業, 옷을 빨아 널빤지에 펴서 말리는 일)에 종사하다 1928년 8월 귀국하던 중 「한 소년으로부터」라는 명의로 교토경찰서에 편지를 보냈다. "아아, 무엇보다도 슬프다! 기다리고 있던 어대전(御大典)(일본 왕 즉위식)은 이제 최후의 5분간이 되었다. 이번의 어대전은 다행하고도 불행하다. 한 발의 폭탄으로 폐하(陛下)의 운명은 ○○○○○○"이라는 내용이었다. 일제는 이것을 일왕(日王) 처단을 의미하는 '불경투서(不敬投書)'라고 판단하였다. 이 일로 귀향하자마자 예천경찰서에 붙잡혔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1928년 9월 26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예심에 회부된 후 11월 18일 면소(免訴)로 결정되었으나 검사가 항고하였다. 1929년 3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고가 기각되어 최종 면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약 7개월간 옥고를 겪은 후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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