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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정

南在晶

1887. 1. 14 ~ 195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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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남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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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태을교
  • · 보화교
  • · 보천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8) 1887년 1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신양리(新陽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태을교(太乙敎)에 입교하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태을교는 강일순(姜一淳)의 제자인 차경석(車京石)이 창도한 종교로, 1920년 교주 밑에 60방주(方主)를 두고 그 하위에 각 6인조, 12인조, 8인조, 15인조를 두어 조직을 확장하였다. 각 조의 구성원은 임(任)이라 칭했다. 1921년 보화교(普化敎)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22년에 다시 보천교(普天敎)로 개명하였다. 교세가 확장되던 1920년 (음)8월경 12인조 조원인 권영구(權寧九)의 권유로 김성술(金聖述)·권영도(權寧燾)·이우석(李雨錫)·유경찬(柳景燦) 등과 함께 영덕군 오보면(烏保面) 대부동(大夫洞) 뒷산에서 8임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일심동체(一心同體)’ 서약을 하고 태을교에 입교하여 8인조에 가입하였다. 태을교는 각 임에 따라 6인조 30원, 12인조 15원, 8인조 10원, 15인조 5원의 치성비(致誠費)를 내도록 하였다. 이 자금의 일부는 제사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태을교 본부에 송금하여 독립운동에 쓰이도록 하였다. 교주 차경석은 “1924년 갑자년(甲子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에 올라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나 조선이 독립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도가 국민이 되고 그 자격에 따라 관직을 얻을 수 있다”라는 ‘갑자등극설(甲子登極說)’ 혹은 ‘차천자등극설(車天子登極說)’을 유행시켰다. 이에 여러 명에게 입교를 권유하여 자신이 속한 8인조 아래 15인조에 4명의 조원을 가입시키고 치성비 10원을 납부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5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51년 12월 27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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