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龍湜
南湜1915. 8. 14 ~ 1966. 11.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준향계
- · 창유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43년 3월 창유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5년 8월 14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蔚珍面) 화성리(花成里)에서 남석화(南錫和)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이고, 자는 수일(守一)이다. 1930년 3월 1일 울진공립보통학교(蔚珍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40년대 국내 항일운동단체인 준향계(準香契)·창유계(暢幽契)에서 활동하였다. 1940년 1월 22일 장세전(張世銓)의 권유로 준향계에 가입하였다. 1938년 2월 조직된 준향계는 1920년대 울진청년회(蔚珍靑年會)와 울진청년동맹(蔚珍靑年同盟), 1930년대 울진노농공작당(蔚珍勞農工作黨 또는 朝鮮獨立工作黨)과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 등에서 활동하던 남원수(南源壽)·장응두(張應斗)·노하순(盧夏淳)·최효대(崔孝大)·장세전·전찬문(田燦文) 등이 주도한 비밀결사였다. 이들은 울진군의 사회운동을 계승하면서 한국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이어 1941년 9월 15일 준향계를 바탕으로 남원수, 최효대 등이 조직한 창유계(暢幽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창유계는 준향계의 설립 목적을 계승하였으며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락, 민족의식 강화, 임시정부로의 요원 파견 등을 운동 방침으로 정하였다. 1943년 3월 창유계의 운동 방침을 실현하기 위해 남원수와 장세전이 임시정부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남원수는 만주를 향해 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장세전은 출발 전날 1943년 3월 19일 발각되어 역시 붙잡혔다. 이 일로 창유계에 대한 대대적인 검속으로 계원 102명이 붙잡혔으며 41명이 구속되었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4년 7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광복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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