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왈기
南曰紀1912. 11. 12 ~ 1992. 7.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공작당
- · 울진적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조선독립공작당 사건
- · 울진적색농민조합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2년 11월 12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蔚珍面) 정림리(井林里)에서 아버지 남치권(南致權)과 어머니 신안주씨(新安朱氏) 주만촌(朱萬村)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이고, 이명은 남준영(南駿永·南俊永)이다. 그의 형 무실재(務實齋) 남진영(南軫永)은 1912년 7월 일본 왕 메이지(明治)가 죽자 상복(喪服) 입기를 거부한 울진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다. 일찍이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31년 7월 15일 울진면 연지리(蓮池里)에 있는 연호정(蓮湖亭)에서 이우정(李愚貞)·윤두현(尹斗鉉)·주진황(朱鎭晃)·전영경(田永璟)·주맹석(朱孟錫)·남왈성(南曰星)·주병순(朱秉淳) 등 14인과 함께 울진노농공작당(蔚珍勞農工作黨)(조선독립공작당(朝鮮獨立工作黨))이라 불리는 비밀결사 결성에 참여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1920년대 울진청년회(蔚珍靑年會)·울진청년동맹(蔚珍靑年同盟) 등을 통해 민족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던 인물들을 규합하였고, 만주에서 브라우닝 권총 1정을 수입하여 울진경찰서 습격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촉진시킨다는 행동 강령과 교양 훈련, 비밀 엄수 등의 행동 방침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행동 강령과 지도 방침에 따라 각 마을에서 야학 개최, 통일적 운동 기관의 수립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3월 29일 울진군 북면(北面) 덕구리(德邱里)에서 윤두현·남왈성·남석순(南石順)·주맹석·최재소(崔在韶)·최학소(崔學韶)·진기열(陳基烈) 등과 함께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 이하 농민조합)을 결성하였다. 남왈성이 의장겸 조직선전부장을 맡았고, 중앙 사무국은 진기열, 고용인부는 윤두현, 청년부는 주맹석, 부인부는 최재소, 소년부는 최학소 등이 책임자를 맡았다. 이 조직에서 소년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한편, 독서회(讀書會)도 참여하였다. 농민조합은 일제의 농촌진흥운동에 대응하여 농촌진흥야학(農村振興夜學)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한편, 민족의식과 계급 의식을 가진 투사를 양성하기 위해 독서회를 조직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34년 2월, 일제 경찰이 농민조합의 활동을 탐지하고 조직원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각종 관련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같은 해 3월 초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35년 7월 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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