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환
南相煥1908 ~ 1933. 4.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수진농민조합
- · 조선농민총동맹
- · 진위청년동맹
- · 수진적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수진(수원
- · 진위)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별내면(別內面) 출신이다. 본적은 경기도 평택(平澤)이다. 1933년 4월 22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사망기사에 따르면 당시 29세로 1908년생으로 추정된다. 1930년대 초반 주로 수원(水原)과 진위(振威)에서 활동하였는데, 1930년 3월 수진농민조합(水振農民組合)을 창설하며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수진농민조합은 농민의 이익 확보와 생활 향상, 농민의 문맹 퇴치와 의식적 교양, 농민의 상호부조와 확고한 단결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하였다. 농민들의 권리를 온전하게 되찾기 위해서 농민계몽과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경기 남부지역에서 주도적인 농민지도자로 활약하였다. 수원청년동맹(水原靑年同盟)·신간회(新幹會) 수원지회(水原支會) 등 수원을 대표하는 청년단체·민족주의 단체가 해소되며 침체에 빠진 수원지역 독립운동을 재건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또한 진위소년동맹(振威少年同盟)·진위청년동맹(振威靑年同盟)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8월에는 조선농민총동맹(朝鮮農民總同盟)의 서기와 중앙집행위원로 선임되어 전국적 농민운동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1930년대 들어 식민지경제가 더욱 침체되고 차별이 노골화되자, 더욱 적극적인 투쟁을 위해 소장쟁의를 주도하고 혁명적 농민조합 전환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타도를 위해서는 농민들의 철저한 비판의식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론교육을 강화해갔다. 또한 지주들의 부당한 착취에 대항하고자 장주문(張柱文)·박승극(朴勝極)·김영상(金榮相)등과 수진적색농민조합(水振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여 소작쟁의를 주도하였다. 1931년 11월 수진소작쟁의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년 4개월이 넘는 옥고와 재판과정에서 병을 얻어 1933년 3월 16일 병보석 되었다. 일제는 오랜 기간 재판을 진행시켰으며 1933년 3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나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옥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1달 만인 4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수원·평택의 600명 주민이 모여 죽음을 애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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