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복
高壽福1911 ~ 1933. 7.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 · 적위대(赤衛隊)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적위대 사건
- · 중국공산당 조선국내공작위원회 사건
- ·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11년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선덕면(宣德面) 선덕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정평공립보통학교(定平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서울로 올라와 1931년 9월 종연방직회사(鐘淵紡織會社) 경성제사공장(京城製絲工場) 여공(女工), 1932년 4월 경성부영(京城府營) 버스 차장 등으로 일하면서 1930년대 국내의 대표적인 항일운동 중 하나였던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1월 말경 정길성(丁吉成)·김응룡(金應龍)·권오경(權五敬)과 협의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회(左翼勞動組合準備會)를 결성하고자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시내 각 공장을 분담하여 활동한 결과, 3월 하순경 과거 노동운동의 이론적 오류를 극복하고 이후 새로운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 단체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일체의 비밀을 엄수하고 조직의 부서를 결정하여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이때 선전부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32년 초 서울 시내에서 서중석(徐重錫) 등을 중심으로 한 중국공산당 조선국내공작위원회 사건, 김창수(金昌洙) 등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등의 검거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한때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2월 중순경 불기소 석방되었다. 이후 대창직물회사(大昌織物會社) 여공 이상덕(李相悳) 등과 함께 동지 규합 활동, 파업 조직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 상순경 정길성에게 부영버스 차장 김정옥(金貞玉)을 소개하여, 당시 회사 내에서 업무상 상해로 입원 중인 직원의 치료비 지급 문제 등으로 종업원 사이에서 불만이 많음을 알고 이를 파업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종연방직회사 여공 서옥순(徐玉順) 등과 대창직물회사 여공 김순한(金順翰)·이정숙(李貞淑) 등도 정길성에게 소개하여 같은 공장 내에서 파업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였다. 당시 서울에서는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뿐만 아니라 경성적색노동조합건설협의회·불·샛별 등과 같은 혁명적 노동운동 조직들도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조직들을 총괄 지도하는 조직으로 1932년 8월 중순경 공원회(孔元檜)·문태화(文泰和)·이만규(異晩圭) 등이 중심으로 적위대(赤衛隊)라는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 이에 따라 좌익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도 그 산하 조직이 되었는데, 그해 9월 16일 부영버스 차고 내에서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 명의의 격문을 살포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적위대가 발각됨에 따라 이때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동대문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같은 해 10월 18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예심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다가 1933년 7월 19일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연건동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 옥고의 여독으로 복막염이 급격히 악화하여 7월 28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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