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세
南炳世1898. 12. 23 ~ 1956. 5.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경북청년대회
- · 사합동맹
- · 화성회
- · 안동청년연맹
- · 경북청년연맹
- · 고려공산청년회
- · 조선공산당
- · 일직청년회
- · 신간회 안동지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898년 12월 23일 경북 안동군(安東郡) 일직면(一直面) 망호동(望湖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 이명은 남동환(南東煥)이다. 1925년 2월 경북청년대회(慶北靑年大會) 개최를 위한 준비위원으로서 선전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대회에 참석했던 경북 각지의 청년 대표들을 중심으로 그 해 3월 21일 대구청년회관에서 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을 조직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창립총회 당일 의장을 맡아 “대중해방의 선구가 되기를 기함”, “이론과 실지(實地)로서 역사적 사용을 완전히 함을 기함”이라는 동맹의 강령을 표방하는 등 회의를 진행하였다. 같은 해 5월 16일 안동의 사상단체인 화성회(火星會) 제1회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7~8월 무렵 계몽운동에 대한 표어 작성, ‘예천(醴泉) 시민 대 형평사원(衡平社員) 폭행 사건’ 조사회 준비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1일 안동청년회관에서 개최된 안동청년연맹(安東靑年聯盟) 발기회와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총회 당일 위 예천 사건에 대한 토의를 진행하는 등 이후 안동청년연맹을 중심으로 항일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같은 해 11월 5일 김천(金泉) 금릉청년회관(金陵靑年會館)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경북청년연맹(慶北靑年聯盟) 발기회를 일제 경찰이 금지하자, 집회금지 철회를 위한 교섭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경북청년연맹 대회가 정식으로 개최되지 못하자 각지 대표들이 비공식적으로 만찬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경북청년연맹 설립을 위한 기성위원(期成委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봄 김남수(金南洙)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김남수를 책임으로 한 야체이카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여름, 연령 관계로 고려공산청년회 활동은 중단하였다. 동시에 안상길(安相吉)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입당과 함께 안상길을 책임으로 한 야체이카에 소속되어 이후 평당원으로 계속 활동하였다. 1927년 일직청년회(一直靑年會) 회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8월 26일 사립 보광학교(普光學校) 대강당에서 개최된 신간회(新幹會) 안동지회 설치대회에 참여하여 간사로 선임되었다. 1928년 1월 신간회 안동지회 정기대회에서 전형위원 과 간사로 선출되어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이 1920년대 안동지역에서 사회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다가 1930년 2월 25일 안동경찰서에 한때 붙잡혔다. 이때는 곧 풀려난 듯하였으나, 같은 해 7~8월 경상북도 경찰부에서 신간회 안동지회원 다수를 붙잡을 때 또 다시 붙잡혀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0년 12월 2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당시 이 사건은 안동뿐만 아니라 상주(尙州)·예천(醴泉)·영주(榮州) 등 경북 북부지방으로 확대되어 일제 당국과 언론에서는 이를 ‘경북공산당 사건’으로 다루었다. 이후 1935년 5월 30일 일직면 내 유지들을 중심으로 면민(面民)의 체육 향상과 운동정신 양성을 위해 조직된 일직구락부(一直俱樂部) 창립총회에서 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6년 5월 2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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