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大化
大化1887. 1. 1 ~ 1945. 4.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외교청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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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7년 1월 1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오천면(梧川面) 승암동(勝巖洞)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직업은 함경 기독교 북장로파 조사(助師)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회령지부장(會寧支部長) 등으로 활동하며 국내외로 연계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 있던 조소앙(趙素昻)·연병호(延秉昊) 등의 주도 하에 결성이 계획되었고, 국내에 있던 안재홍(安在鴻)·이병철(李秉澈) 등이 호응하면서 조직이 성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조소앙 등의 외교 활동을 후원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는데, 결성 후 서울에 중앙부(中央部)를 두는 한편 대전(大田)과 회령(會寧), 충주(忠州) 등지에 국내지부를 두면서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상하이지부(上海支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외연적으로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 등과도 공동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단원을 상하이로 파견시켰다. 또한 『외교시보(外交時報)』 등을 통해 국제정세를 국내에 알렸고, 「국치기념경고문(國恥紀念警告文)」등의 격문으로 독립운동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919년 8월에는 안재홍·이병철 두 총무의 명의로 독립운동에 관한 「건의서」를 작성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냈다. 6개 항목으로 구성된 건의서에는 독립운동세력의 협동, 상하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정무(政務) 통일, 세계열강 각국에 외교원 특파, 일본 정부에 외교원을 파견하여 국가 독립을 요구, 서울에 교통본부를 설치하여 국내와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 조소앙을 국제연맹회의에 파견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시행하고 있던 연통제(聯通制)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연통제는 임시정부가 국내 국민들과의 연계를 위해 국내에 설치한 지방 행정제도로,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 겸 내무총장이었던 안창호(安昌浩)의 주도 하에 마련되었다. 회령지부장으로서 청년외교단과 애국부인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중 임시정부와의 연계 활동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황해도·평안도·함경도 등지에서 연통제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1919년 11월 말, 조직 확대를 위한 선전 활동에 힘쓰던 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6월 30일 만기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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