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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華鎭

華鎭

1904. 10. 17 ~ 1946.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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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華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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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榮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간회
  • · 영주청년동맹
  • · 영주적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904년 10월 17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평은면(平恩面) 수도리(水島里, 현 영주군 문수면 수도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줄포(金茁浦)를 사용하였다. 영주공립보통학교(榮州公立普通學校)를 중퇴한 후 영주청년동맹(榮州靑年同盟) 집행위원,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 집행위원, 영주농민조합(榮州農民組合)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는 등 영주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영주군에서 지역 청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친일 어용 단체인 순흥청년회(順興靑年會)가 조직되자, 영주청년동맹에서는 이를 해체시키기 위해 1929년 4월 영주청년동맹 회관에서 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그 방법을 협의하였다. 이때 교섭 위원 3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4월 27일 순흥청년회 총무의 집으로 가서 해체를 압박했는데, 이 사건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30년 7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곧바로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1931년에는 영주에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김봉호(金鳳浩)·김계등(金季登)·박병성(朴炳星) 등과 함께 조직 결성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비밀결사인 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榮州共産主義者協議會)를 조직하였다. 조직 내에서 적색농민조합 책임자 임무를 맡아 동지를 규합하는 등 조직 확장에 힘썼다. 그러나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은 활동 초기 단계에서 경찰에 발각되어 와해되었다. 1932년 7월부터 관련자 검거가 시작되었고, 영주·봉화(奉化) 지역 적색농민조합 활동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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