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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특술

金特述

1923. 1. 29 ~ 200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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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특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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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慶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결심대(決心隊)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결심대의 대왕산죽창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3년 1월 29일 경상북도 경산군(慶山郡) 남산면(南山面) 송내리(松內里)에서 아버지 김호수(金浩壽)와 어머니 장함부(張咸榑) 사이에서 태어났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44년 7월 26월부터 8월 13일까지 경산군 남산면 청년들이 일제의 강제동원을 거부하고 집단적·조직적으로 벌인 징용·징병거부운동, 이른바 결심대(決心隊)의 대왕산죽창의거(大王山竹槍義擧)에 참여하였다. 1944년 6월 남산면 사월리(沙月里) 출신 박재달(朴在達) 등이 징병·징용을 위해 청년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박재달 등은 7월 5일과 8일, 15일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졌다. 7월 15일에 송내리의 김위도(金渭道)·최덕종(崔德鍾) 등과 함께 원당보(元塘湺)에서 열린 3차 회합에 참석하여 대원 29명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7월 26일 새벽 남산면 사월·산양·송내·남곡리에서 모인 26명의 청년들과 함께 대왕산(大王山)으로 올라갔다. 정보연락대 3인 외에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은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고 편제를 정했으며, 3소대 소대장 최외문(崔外文) 휘하에서 일본 경찰과 무력 충돌을 이어갔다. 이후 일제가 식량 공급을 차단하자 8월 9일 이를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대원들과 함께 하산한 후에 은신하였다. 8월 13일까지 모든 대원들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함께 붙잡혔다. 남산면사무소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고 경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소위 보안법과 폭력행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44년 10월 14일경 대구형무소로 다시 이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 등 옥고를 겪다가 광복 후인 1945년 8월 17일 소송이 취하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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