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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통안

金通安

1897. 6. 17 ~ 195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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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통안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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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배달청년회
  • · 살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배달청년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6월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 횡간리(橫看里)에서 김문찬(金文贊)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이명으로 김상포(金相泡)를 사용하였다. 1920년대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20년 소안도의 유지·청년들이 지덕체(智德體) 함양을 목적으로 배달청년회를 창립하였다. 1923년 면장과 연장자들이 모두 탈퇴하고 진보적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개편되었는데, 여기에 1925년 가입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6년 6월 15일 소안면 미라리(美羅里) 서당에서 창립된 사상단체 살자회에 참여하였다. 당시 회원은 모두 25명이었고, 강령은 상호부조와 정의에 희생할 정신 함양과 신사회 건설이었다. 1927년 8월 28일 완도청년동맹의 결의에 따라 배달청년회를 해체하기 위해 11월 26일 총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배달청년회는 조선청년총동맹이 지방의 각 부군에 하나의 청년동맹을 두고 그 아래 각 면에 지부와 리에 반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청년운동 조직을 개편한다는 방침에 따라 완도청년동맹 소안지부로 개편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배달청년회의 청년회원 이정동(李廷東)이 작성한 발전적 해체의 취지를 담은 「선언문」이 문제가 되었다. 일제 경찰은 「선언문」이 정치 변혁을 목적으로 하여 안녕질서를 방해하였다는 구실로 배달청년회 간부들을 구속하여 이른바 ‘배달청년회 사건’을 일으켰다. 11월 28일 상무위원 최평산(崔平山), 집행위원 이낙재(李洛宰), 완도청년동맹 집행위원장 신광희(申光熙), 신간회 완도지회 간사 최형천(崔亨天), 회원 이월송·이찬욱 등이 완도경찰서로 끌려갔고, 며칠 후 7명의 간부들과 함께 추가로 연행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13명이 1928년 8월 10일까지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예심을 받고, 8월 15일 목포형무소로 이감되었다. 1929년 3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고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30년 3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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