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선
金泰善1922. 5. 9 ~ 2005. 6.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삼천당(三千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양학병의거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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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2년 5월 9일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 두산리(斗山里)에서 아버지 김수원과 어머니 박창길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36년 원산 명석소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4월 일본 사립동경고등공학원 중학공학부 기계과에 입학하여 1941년에 졸업하였다. 1943년 12월 같은 학교 고등공학부 기계과 2학년 재학 중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어 그 해 12월 12일 함흥검사장[함흥공립국민학교]에서 학도지원병 전형 검사를 받았다. 12월 21일 평양 교외 추을(秋乙)에 주둔한 평양사단에 입대하여 조선제42부대 산본대(山本隊)에 배치되었다. 부대 내무반에서 한국인 학도지원병들은 일본인 고참병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면서 강압적인 징병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부대 내 모멸적 언동, 사적 제재 등으로 점차 민족의식을 품게 되었다. 1944년 7월 중순 민족 차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자 42부대 내에서 부대 탈출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42부대에는 출신지나 소속중대에 따라 함남, 함북, 평안도 등 몇 개의 그룹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김완룡(金完龍)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밀결사 ‘삼천당(三千黨)’이 결성되었고, 책임부서 인선과 조직이 착수되자 이에 참가하여 피복 사무를 담당하였다. 그리고 최정수(崔正守)를 지대장으로 하고 함남 출신들로 구성된 참모부의 제2지대에 소속되었다. 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거사에 돌입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무장을 위해 노력한다” 등 4개조의 당원 규약에 의거하여 행동하기로 결의하였다. 1944년 8월 내내 부대 탈출 작전 계획을 위한 조직이 편성되었는데, 최고지휘자 김완룡 휘하에 참모부를 두고 참모부 아래에 42부대원으로 편성된 제1지대와 44, 47, 48, 50부대원으로 편성된 제2지대를 두었다. 여기서 제1지대 최정수 지대장 직속의 제1분지대를 맡았다. 1944년 10월 1일 추석 밤 12시를 시점으로 정하고 개별적으로 부대를 탈출하여 양덕(陽德)의 북대봉 기슭에 집합한 다음, 야간 행군하여 최종 목적지인 함남 갑산 보천보(保天堡)에서 항일 게릴라전을 펼칠 계획이었다. 그 해 8월 25일 대규모 기동훈련이 발생하는 바람에 거사일이 11월 1일로 연기되었다. 그러나 추을헌병대 임영호(林永鎬)의 밀고로 학도병들에 대한 헌병대의 감시가 심해졌다. 이어 같은 해 9월 25일 김완룡과 외출하여 평양 신흥루(新興樓)에서 술자리를 갖던 중 김완룡이 일본군 오장(伍長) 상관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헌병대로 끌려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평양학병의거 계획의 전모가 드러났다. 1944년 10월 24일을 기해 다른 관련자들도 모두 적발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1945년 6월 10일 평양군관구 임시군법회의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8·15 광복으로 풀려났다.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타고 월남하였다. 이후 부산에 정착한 뒤 군인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조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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