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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

金正國

188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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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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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정선(旌善)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정선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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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강원도 정선군(旌善郡) 서면(西面) 회동리(檜洞理)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경성복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41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격고팔역(檄告八域) 인민문(人民文)」을 배포하는 등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동조하기를 갈망하며 독립실현에 노력하고자 뜻을 품고 있었다. 1920년 (음)11월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대화면(大和面) 신리(新里) 사동(寺洞)에서 서당교사인 김봉일(金鳳一)과 만나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획하였다. 그 일환으로 김봉일이 고종의 서거를 독살이라고 생각하여 초안을 써놓은 「격고팔역 인민문」을 완성하자, 이 격문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뒤, 1921년 11월 말에는 각도 경찰부장과 일반인들에게 민족의식 고취 문서 배포를 계획하였다. 김봉일의 아들 김도원(金道源)에게 이 계획을 알려 동참시키고 12월 2일에는 김봉일도 참여시켰다. 아울러 태평양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이 인정되었다고 두 사람에게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김봉일이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귀국시키라는 통고문을 작성하였다. 이때 이 통고문을 각도 경찰부장에게 발송하고자 하였으며, 각지 유지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선전하는 격문을 발송하고자 하였다. 이에 김봉일이 12월 초 통고문과 격문 40여 통을 작성하고, 2통을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아울러 남은 38통을 받아 이중 30여 통을 12월 12일 강릉(江陵)일대에 우편으로 발송하였고 8통은 김도원이 평창군(平昌郡) 대화면(大和面)으로 발송하였다. 12월 16일에는 김도원의 집에서 격문을 추가 발송하기로 하고 김봉일이 작성한 9통의 격문을 두 사람과 함께 각각 3통씩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3월 11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으나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1922년 6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4년 4월 2일 함흥형무소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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