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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萬

永萬

1911. 2. 21 ~ 194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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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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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論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협동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경주적색농민조합사건
  • · 경주독서회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충청남도 논산(論山) 출신이다. 1911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1923년 4월 논산군 연산공립보통학교를 3학년 때 퇴학하였다. 1930년 8월 연극단에 가입하여 배우로서 각지를 전전하다가 1934년 2월 이래 경주군 감포에서 요정 대흥관(大興館) 서기로 일하였다. 1934년 6월부터 경주군(慶州郡) 양북면(陽北面) 감포리(甘浦里)에서 김성도(金成道)의 집에서 배용득(裵龍得) 등과 현대 자본주의제도와 사회개혁을 앞세우고 행해지는 일본인의 한민족에 대한 착취 등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협동회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1주일에 1회씩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1934년 9월 초 경주에서 개최된 신라제(新羅祭)에서 가두의 등롱(燈籠)을 파괴하는 데서 단서가 발각되면서 이른바 ‘경주적색농민조합사건’ 관련자 80여 명과 함께 경주경찰서에 붙잡혀 8개월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이들 가운데 10명이 구속되어 1935년 4월 11일 대구검사국에 송치되었고 1935년 4월 23일 기소되어 이칠성(李七聖) 등 9명과 대구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경주적색농민조합사건’은 1935년 12월 27일 예심종결이 되어 5개월이 지난 1936년 5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1심 공판이 진행되었다. 1심 공판에서는 감포에서 협동회를 조직하여 체육을 장려하려고 했을 뿐 비밀결사는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1936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 선고 공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180일 산입)을 받았다. 항소하여 1936년 10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회주의 학설에 대한 이론은 찬성하였지만 사회주의 실천을 위해서 독서회 등을 조직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였다. 하지만 대구복심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여 징역 1년과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고 1936년 11월 5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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