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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순

金希舜

1878. 11. 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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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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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이원(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이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이원군 동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78년 11월 5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원상리(院上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3월 17일 이원군 동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함남 이원군의 만세운동은 이원군 동면(東面) 의덕리(儀德里)에 거주하는 이도재(李道在)가 주도하였다. 함흥군(咸興郡) 주북면(州北面)의 천도교인 이기완(李岐完)과 함께 한국인 관리를 포섭하기 위해 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이도재는 1919년 3월 7일경 서울에서 온 박용해(朴龍海)에게 받은 독립선언서 1매를 지참하고 바로 천도교 이원교구장인 김병준(金秉濬)을 찾아갔다. 이도재와 만나 이원군의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하던 김병준은 이원군 천도교의 중심 인물들인 공시우(孔時祐)·박승룡(朴承龍)·장홍규(張弘圭) 등 13인을 이원교구로 소집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이원지단(利原支團)을 결성한 후, 서면 장날인 3월 10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만세시위를 위해 독립선언서 500여 매를 등사하였고, 인근 지역으로 사람을 파견해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또한 2천만 동포에게 독립을 알리는 격문 100여 매를 작성해 장터 인근의 가구마다 배포하였다. 3월 10일 700여 명의 군중은 이원군 서면 남문리(南門里)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조선독립단 이원지단이 주도한 이 날 시위로 촉발된 이원군의 만세시위는 3월 중순 군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동면의 경우, 3월 11일 군선항(群仙港)에서 장홍규의 주도로 1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고, 상선리(上仙里)에서는 조선독립단의 깃발을 든 3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1919년 3월 17일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펼칠 것이니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당일 주민들과 함께 동면(東面)의 상선리에 위치한 면사무소로 나갔다. 100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김도윤(金道允)·김병직(金丙直)·김종익(金鍾翊)·이경수(李敬洙)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는 세금 반환을 요구하면서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8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다시 1심과 2심의 판결 때 공개하지 않았고 변론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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