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喜文
喜文1889. 7. 17 ~ 1970.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의성군 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9년 7월 17일 경북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송내동(松內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의성군 점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의성군의 만세시위는 3월 12일부터 4월 3일까지 비안면·안평면·봉양면·의성면·점곡면·신평면·가음면의 순서대로 전개되었다. 학생과 유림, 농민, 용인(傭人) 등이 각 면의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이 중 점곡면의 만세시위는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있던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영양 남씨 가문이 연합하여 주도하였고, 여기에 송내동교회의 교인들이 다수 참여한 독특한 형태였다. 안동 김씨와 안동 권씨, 영양 남씨는 서로 혼반(婚班)을 형성하고 있어서 어떤 일이 있을 경우, 서로 결합하는 일이 이전에도 잦았다고 한다. 점곡면의 만세시위 역시 이러한 관성이 크게 작용하였다. 점곡면의 만세시위는 3월 15일 안평면 대사동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직후 송내동교회의 조사(助事) 권수백(權秀伯) 등이 교인과 주민들을 향해 만세운동의 당위성을 피력하면서 준비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의성면 의성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또다시 전해오자 점곡면에서도 김태호(金太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만세운동을 본격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송내동 교회의 신도로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8일 밤 9시경 점곡면 사촌동 앞길에 모인 30~40명의 주민은 김태호의 선창을 시작으로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밤 11시경 자진 해산한 후, 다음 날인 3월 19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200여 명의 주민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점곡면 주재소를 포위하고 진입하였다가 경찰의 해산 시도에 잠시 흩어지기도 하였지만, 밤 9시경 500명이 다시 모였다. 윤암동에서는 남승순(南勝淳)과 남규우(南圭佑)를 비롯한 영양 남씨 가문이 결집하였고, 송내동에서 기독교인들이 결집할 때 참여하였다. 또한 안동 권씨 가문에서 권승헌(權承獻)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서변동 사람들도 함께 하였다. 이들은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고, 주위를 돌면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20일 새벽 1시경까지 지속되다가 경찰의 위협 발포에 해산되었다. 날이 밝은 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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