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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希龍

希龍

1867. 8.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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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希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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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곡산(谷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곡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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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곡산군 곡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67년 8월 15일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곡산면(谷山面) 송항리(松項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다가 곡산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곡산군은 황해도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의 수안군(遂安郡)과 함께 천도교가 일찍부터 전파된 지역이다. 천도교 곡산교구는 대교구제가 실시된 1914년부터 수안교구, 신계교구와 함께 서흥대교구에 속하였다. 곡산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인들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곡산군의 만세운동은 3월 3일 천도교 곡산교구의 교훈인 이경섭(李景燮)이 이재경(李載景)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1919년 2월 28일 이경섭은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자 천도교의 지도자인 도사(道師) 나용환(羅龍煥)과 홍기조(洪基兆)로부터 독립선언서의 배포를 부탁받았다. 또한 같은 날 이경섭은 보성사(普成社) 사장이자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 이종일(李鍾一)로부터도 황해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와 함께 독립선언서 1,000매를 받았다. 이경섭은 3월 1일 서흥교구의 교구장인 박동주(朴棟周)를 만나 독립선언서 750매를 전달하고, 서흥(瑞興)과 해주(海州)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날 저녁 수안교구의 공선원(共宣員)인 이종숙(李宗淑)의 집으로 간 이경섭은 안봉하(安鳳河), 김영만(金永萬), 홍석정(洪錫禎) 등 천도교 수안교구의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그리고 독립선언서 100여 매와 함께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와 같이 수안지역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군내에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이종일의 지시를 전달하였다. 이후 곡산으로 간 이경섭은 곡산 읍내 원형도(元亨道)의 방에서 이재경을 만나 「독립선언서」 3매를 전달하였다. 이재경은 그 가운데 1매는 읍내에 있는 경명문(景明門)에 붙였고, 나머지는 같은 마을의 김응택(金應澤)과 김여원(金礪元)에게 주면서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고 강덕근(康德根), 김인갑(金寅甲) 등과 함께 3월 4일 곡산 읍내에서 전개할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청계면(淸溪面)의 이병규(李秉奎)와 서촌면의 조병하(趙秉夏) 등에게도 만세시위에 대한 계획을 알리고 동참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에서 사용하기 위해 흰 무명에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직접 만들었다. 1919년 3월 3일 송항리의 천도교 전교실에서 수안교구 지도자 홍석정(洪錫禎)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곡산의 만세운동에 나설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찬동하고 흰 무명에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직접 만들었다. 3월 4일 오전 10시경 천도교 전교실에서 이경섭·이재경(李載景)·김인갑(金寅甲)·강덕근(康德根)·조병하(趙秉夏) 등 곡산의 천도교 지도부와 함께 회동하였다. 지도부의 일원으로 직접 제작한 ‘조선독립만세’의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조영섭(曹永燮)·문창환(文昌煥)·김창현(金昌玄)·이문일(李文鎰) 등 50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는 송항리에서 곡산 읍내를 향해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들의 제지를 받았고, 지도부와 함께 헌병 분대에 붙잡혔다. 같은 날 청계면(淸溪面)과 서촌면(西村面)에서도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곡산 읍내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헌병 분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고문 등 가혹한 조사를 받고 공판에 회부되었는데,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 재판소로 지정받았다. 이에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2월(미결 구류 일수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 구류 일수 6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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