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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규

金熙奎

1894. 9. 30 ~ 195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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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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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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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성주군 성주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9월 30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성주읍(星州邑) 용산동(龍山洞)에서 김선모(金善模)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우문(宇文)이고, 호는 호당(湖堂)이다. 어려서 집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9년 성주군 성주읍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성주군에서는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이 주도하여 성주군 벽진면(碧珍面) 고산동(高山洞)에 있는 백세각(百世閣)에서 「국내통고문(國內通告文)」을 제작하고 배포하며 4월 2일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같은 기독교인을 규합하여 유림측의 송회근(宋會根)을 만나 4월 2일 성주읍 장날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하기로 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성주군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후 1시 성주읍 장날을 기해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서 기독교도들을 이끌고 태극기를 들고 성주읍 시장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시장 중앙에 모였던 유림측은 송우선·송회근의 주도하에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때 일본 경찰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인물 몇 명을 경찰서로 끌고가자 군중들의 분노는 한층 높아갔다. 경찰서 앞으로부터 남쪽 군청 앞과 그 양쪽 소로에는 700~800명, 동쪽 우편국 앞으로부터 시장 통에는 약 1,500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경찰이 발포하기 시작하자 군중들은 일시 물러났다. 이후 서북방 산 정상에 모여 불을 피워 놓고 밤늦도록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밤 10시경 해산하였다. 이 만세시위에서 일본 군경의 발포로 이태희(李兌熙)와 2명이 현장에서 총을 맞고 사망하였으며, 이봉희 등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본 군경이 주도 인물의 검거에 나서자 곧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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