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삼
金興三1882. 2. 18 ~ 1938. 8.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수원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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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2월 18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장안면(長安面) 수촌리(水村里, 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정규(正奎)이다. 1919년 당시 38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4월 3일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雨汀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오전 11시, 장안면 수촌리 구장 백낙렬(白樂烈)이 보낸 마을 소사(小使) 이원준(李元俊)으로부터 만세시위 계획과 시위 장소와 일시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이에 응하여 장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이 날 오후 12시 장안면사무소 앞에서 전개될 예정이었던 거사는 장안면과 우정면의 천도교와 기독교, 천주교 세력 등이 연합하여 사전 계획을 통하여 준비된 것이었다. 이 날 약속된 시간에 장안면 어은리(漁隱里)에 위치한 면사무소에는 200여 명의 군중들이 집결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고 차인범(車仁範)·이순모(李順模)·이영쇠(李永釗) 등과 함께 시위 군중을 솔선하며 돌과 몽둥이로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기기와 서류를 끄집어내 소각하였다. 장안면사무소를 습격한 이후 면장 김현묵(金賢默)을 앞세우고 쌍봉산(雙峯山)에 올라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산을 내려와 우정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3시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한 후, 앞장서서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렸다. 면사무소 건물을 돌로 파괴한 이후 사무실로 들어가 기기와 서류를 꺼내어 불태웠다. 오후 5시 무렵,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가 있는 우정면 화수리(花樹里)로 이동하여 주재소를 돌을 던져 공격하였다. 이에 주재소에 있던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시위 군중을 향해 총을 쏘고 북쪽 언덕으로 도망쳤다. 이에 다수의 군중과 함께 쫓아가 몽둥이와 돌로 순사를 처단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를 소각시켰다. 시위가 끝난 후 붙잡혀 고문 등 가혹한 조사를 받고 공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이 내란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였는데, 8월 9일 경성지방법원은 공소 불수리 처분을 내렸다. 결국 같은 해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 살인, 방화로 징역 3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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