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식
金厚植1896. 5. 20 ~ 1959. 6.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강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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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5월 20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동문리(東門里)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였고,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강진면 동성리(東城里)에 거주하였으며 강진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2일 저녁 강진군청 뒷산의 숲 속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기독교 신자인 황호경(黃鎬經)·이기성(李基性)·김현봉(金炫奉) 등을 만나 3월 25일 강진 읍내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과 함께 시위에 필요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거사 계획은 일본 경찰에게 누설되어 수포로 돌아갔다. 이에 굴하지 않고 시위 날짜를 그 다음 장날인 4월 4일로 연기한 뒤 다시 독립선언서와 독립가(獨立歌) 등을 필사하고 태극기 수백 장을 만들어 자신의 집에 보관하였다. 4월 4일 장날을 맞아 강진군청 뒷산 정상에 올라가 대형국기를 나무에 건 뒤 장터 방향으로 내려갔다. 강진시장에서 김현봉·황호경·오승남(吳承南)·김춘석(金春錫) 등과 함께 태극기 약 300장, 독립선언서 약 70매, 독립가 약 20매를 가지고 다수의 군중에게 나누어준 후 이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무력 진압에 나선 일제 경찰에 장터 부근에서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오히려 형량이 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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