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和仁

和仁

1898. 12. 17 ~ 1944. 5.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和仁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홍성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8년 12월 1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화양리(華陽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2일 홍성시장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 가산리(佳山里)에 서당(書堂)을 열어 어린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던 민영갑(閔泳甲)은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였다. 이에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李載萬)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을 동지로 확보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민영갑, 이재만 등은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이원교의 집으로 가서 연극을 관람하였다. 이들은 연극이 끝날 무렵인 오후 8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수십 명의 주민들이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본 경찰이 출동하였으나, 이날의 시위는 체포자 없이 해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인 2일 민영갑, 이재만 등은 가산리 주민들과 다시 모여 홍성시장으로 가서 전날에 이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은 홍성시장의 장날이었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민영갑과 이재만의 지휘에 따라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