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화원

金華元

1864. 5. 6 ~ 1968. 1. 3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화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64년 5월 6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형원(金炯源)이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영덕군 창수면은 영해면(寧海面), 병곡면(柄谷面)과 더불어 경북에서 독립만세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영덕군 북부 지역의 한 곳이다. 1919년 3월 18일 창수면 삼계동(三溪洞)과 오촌동(梧村洞) 주민들은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러나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러 시간상 영해까지 가기에는 늦었다는 판단하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신기동의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튿날인 3월 19일 오후 4시경 이현설, 이수각(李壽珏) 등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기세를 몰아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사무실, 객사, 주임 순사 숙사의 벽과 천정을 파괴하고 집기와 서류를 파손하였다. 계속해서 오용이(吳龍伊), 이강복(李康福), 박석문(朴石文)의 집으로 가서 주임 순사 다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와 한국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 권찬규(權燦奎) 등이 은닉해 두었던 각종 물품과 서적을 파손하였다. 영해에 파견된 일본군 부대가 창수동으로 6명을 급히 보냈으나, 시위대는 그에 앞선 오후 7시경에 철수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은 대대적인 만세시위자의 색출과 체포 작전을 전개하였고, 이때 95명의 주민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0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그 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