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金弘洙187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삭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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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 삭주면(朔州面) 서부동(西部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6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고향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며 삭주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민족대표 33인’인 이승훈(李昇薰)과 유여대(劉如大)는 1919년 2월 말 평북 의주군(義州郡) 월화면(月華面) 교회 목사 송문정(宋文正)을 삭주교회(朔州敎會)에 밀파하여 사전에 시위 소식을 알렸다. 3월 1일 천도교 의주대교구장인 최석련(崔碩連)은 삭주군 천도교구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삭주군 천도교구는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천도교인에게 배포하였다. 1919년 3월 삭주면에서는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간헐적으로 여러 날 일어났다. 3월 5일 오후 2시에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3,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고, 일본 헌병의 발포로 4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3월 9일에는 삭주면에서 기독교인 50여 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0일 삭주군 서부동(西部洞)의 김명봉(金明鳳)이 삭주면 온풍동(溫豊洞)의 온정령(溫井嶺) 고개 길에서 박형빈(朴亨彬)으로부터 독립선언서 등을 전달받았다. 이때 서부동 기독교회 목사 박인도(朴麟道)와 함께 김명봉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매와 선언서가 온 취지를 전달받았다. 3월 14일 밤 김명봉이 삭주헌병분견소에 붙잡히면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이때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항소하여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다시 “민족자결 시대를 맞아 파리강화회의에서 각국 식민지 및 영토가 합방된 여러 국토는 본 민족에게 돌려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기쁘고 즐거워 만세를 불렀는데, 만일 만세를 부른 사람을 처벌하고자 한다면 모든 조선 국민을 처벌해야 법리에 맞을 것”이라고 항변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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