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洪烈
金洪1898. 11. 16 ~ 1924. 11.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군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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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8년 11월 16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취동리(鷲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천도교인으로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어 군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의 인쇄를 담당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2월 28일 독립선언서 약 3천부를 받아 평안도에 배포할 것을 지시받았다. 이에 평안도를 찾아 독립선언서를 나눠주어 평안도 지역의 독립운동 기세를 모는 데 기여하였다. 임무를 마친 뒤 복귀하여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인 옥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옥구에서 만세운동을 새롭게 기획하고자 하였다. 당시 군산과 옥구에서는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 교사와 학생이 중심이 된 만세운동이 계획되고 있었다. 또한 한국인 학생들의 민족 의지를 억압하는 군립보통학교에 대한 방화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군산과 옥구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의지가 치솟고 있었기에 이 기세를 확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계획에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유학생 진장권(陳壯權) 외에 채만식(蔡萬植)·김석종(金錫宗)·최한례(崔漢澧)·황봉규(黃鳳奎)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3월 29일 임피(臨陂) 장터에서 장날을 기하여 봉기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계획을 추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6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출옥한 뒤에도 청년계와 교육계 등에서 다방면의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비밀결사 삼성구락부(三省俱樂部)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치다가 붙잡혀 고문 끝에 1924년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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