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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金浩俊

1897. 9. 11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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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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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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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합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97년 9월 11일 경남 합천군(陜川郡) 함천읍(陜川邑)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합천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제의 총탄에 희생되었다. 합천의 만세시위는 고종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했던 강홍렬(姜弘烈)이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후 비밀리에 합천 전역에 전달하며 계획되었다. 서울과 인근에서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주경천(朱擎天)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대양면(大陽面) 대암리 수암정에 모여 거사를 계획하고, 3월 19일 합천읍 장날을 거사일로 약정하였다. 1919년 3월 19일 합천읍 장날에 주도 인물들은 태극기를 들고 합천읍으로 들어가, 오후 4시경 장터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5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호응하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심재기(沈載祺)를 비롯한 16명을 검거하고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날 만세운동을 주도한 17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실에 분개하여 3월 20일 대양면민을 중심으로 다시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3월 20일 대양면 마정마을에 많은 시위 군중이 모이자, 이 자리에서 심맹권(沈孟權)·김영기(金永琪)·손득룡(孫得龍)·이용선(李龍善)·추용만(秋鏞滿)·이상우(李相宇)·배상룡(裵祥龍) 등 12명이 결사대를 조직하고 선두에 서서 6km 거리인 합천읍내로 행진하였다. 오후 7시경 시위 군중과 함께 합천경찰서로 가서 구금된 17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합천경찰서를 습격하고, 일본 경찰을 구타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고 무차별 총격을 가해 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때 김영기·추용만·강시만(姜時晩)과 함께 일본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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