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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갑

金炯甲

1902. 3. 27 ~ 197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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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형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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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晉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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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암살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902년 3월 27일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 내동면(奈洞面) 유수리(柳樹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형재(金炯才·金炯材)·김백오(金白吾)를 사용하였다. 1920년대 중반 비밀결사 암살단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에 나섰다. 암살단은 1925년 9월 장진홍(張鎭弘)·이원록(李源祿, 이육사(李陸史))·이원기(李源祺) 등에 의해 조직된 단체로서,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1927년 1월경 이원기의 권유로 진주에서 중외일보사(中外日報社) 지국장을 하고 있던 조우제(趙佑濟)와 함께 암살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서울·대구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주로 하였다. 1927년 암살단은 장진홍을 중심으로 대구의 주요 관공서, 은행, 부호 등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방식의 암살 파괴공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다이너마이트로 사제 폭탄을 제조하여 경상북도 도청·경상북도 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식산은행 대구지점 등 네 곳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정하였다. 폭탄 제작은 맡은 장진홍은 10월경 투척용 폭탄 4개와 자살용 폭탄 1개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10월 18일 투척용 폭탄을 선물인 것처럼 포장해 나무상자에 넣은 후, 제일 먼저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보내 폭파를 시도하였다. 폭탄 3개가 폭발되어 건물 유리창이 파괴되었고, 은행원과 경찰 등이 중상을 입었다. 이른바 ‘대구 폭탄 사건’으로 1927년 12월경 암살단 동지들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의 주도자 장진홍은 사건 발생 직후 도피하였다가 1928년 10월 이후 붙잡혔다. 이 일로 폭발물취체벌칙 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미수 및 협박 등으로 기소되었다. 1년 6월여 옥고를 치른 후 1929년 5월 6일 대구지방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12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예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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