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金學洙1900. 6.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여주군 북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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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1900년 6월 17일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현 여주시) 북내면(北內面) 신남리(新南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김해광정(金海光政)이다. 1919년 당시 고향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직업은 견습 면서기였다. 1919년 4월 3일 여주군 북내면 당우리(堂隅里) 부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여주군에서는 4월 1일 경성공립고등학교(京城公立農業學校) 학생 이원기(李元基)가 이원문(李元文)의 집에서 조경호(趙經鎬)·원필희(元弼喜) 등과 모여 만 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가지고 있던 독립선언서를 참고하여 5일 여주 장날을 기하여 독립운동을 할 것이니 모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배포하였다. 이 사실에 공감하여 3일 북내면 장암리(長岩里) 구장 원도기(元道基)의 집에서 이원기·원필희와 함께 태극기를 만들어 시위에 참여할 준비를 하였다. 같은 날 밤 오금리(五今里)의 최영무(崔永武)·강만길(姜萬吉) 등은 현암리(峴岩里) 주민과 북내면장 조석영(曺錫永)의 석방을 위해 북내면사무소에 모였다. 최영무가 만세시위에 참여하러 나올 것을 권하자, 여기에 합류하여 장암리(長岩里)·와룡리(臥龍里)·덕산리 주민을 독려하며 함께 당우리 공북학교(拱北學校) 교정으로 이동하였다. 8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휘두르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그러다가 오학리(五鶴里)에 이르러 일본 헌병의 발포로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후 해산하였다. 4월 7일 오후 1시부터 일본 헌병과 보병이 북내면 신남리와 현암리로 출동하여 3일 만세시위의 주도자 등 45명을 검거하였다. 현암리의 주민 약 200여 명이 모여 체포반을 공격하며 저항하였다. 이어 이원기·심상의(沈相義)·조경호 등 4명은 12일 여주헌병분대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항소하여, 그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다시 “만세시위 행위는 정의·인도에 기초하는 의사의 발동으로 범죄가 아님”을 주장하였고, 제1심과 제2심의 유죄 판결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상고하였다. 또한 변호인 다카하시 소노스케(高橋草之助)를 선임하여, 제2심의 신구법의 임의적 적용에 따른 형기 변경은 부당하므로 불법적 판결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1919년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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