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
金皓經187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동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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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1878년 서울 니현(泥峴, 진고개, 현 서울시 명동·충무로 일대)에서 태어났다. 1907년 김동신 의병부대에 참여해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미의병은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해산 군인들의 항쟁을 시작으로, 농민·유생·광부·포수 등 각계 각층이 무장 투쟁에 합류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때 1907년 6월경부터 스스로 격문을 기초하여 각지에 배포하고 국난의 시기에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하였다. 체포된 후 일본인 검사에게 “시국에 분개하여 정사(政事)를 변경하기 위해서” 의병을 일으켰음을 역설하였다. 의병 48명을 모집하여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합류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김동신(金東臣) 의병장 외 3명과 연합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총으로 무장한 4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경기·충남·전북·경북 각지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07년 7월 30일에는 수십 명의 의병들과 함께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동도면(東道面) 기곡리(基谷里)에 거주하는 박해륜으로부터 군자금 30원을 모집하였다. 1907년 10월 8일에는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4일 뒤인 10월 12일에는 경상북도 상주군(尙州郡)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2시간에 걸친 격전을 벌였다. 이후 의병 활동을 지속하다가 1909년 경 정사강(鄭士康) 등과 함께 붙잡힌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8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소위 내란 및 강도로 종신유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09년 9월 20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1910년 8월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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