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공흡
姜公洽1917. 1. 8 ~ 1974. 6.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제주적색농민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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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917년 1월 8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구우면(舊右面,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挾才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구우공립보통학교(현 한림초등학교) 재학 중 협재소년회에 가입하였고, 한글 잡지 『어린이』를 읽으면서 민족의식을 자각, 독립운동에 관심을 두었다. 1931년 6월 윤한진(尹漢珍)의 단추 공장에 취직하였다. 1932년 5월 3·1절과 노동절 노래 등을 가르치다 검거되었던 장용진(張瑢珍)이 출옥하자 환영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장용진이 오랜 감옥 생활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일제와 자본계급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족과 무산계급을 위해 분투하였다고 격려하면서 독립운동을 함께하기로 결의하였다. 1933년 1월 홍경옥(洪卿玉)·장용진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고 무산자 정치 과정, 노동 문제 등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각자의 의식 향상에 노력하였다. 1933년 9월 구우공립보통학교를 이전하는 문제에 관하여 ‘공립보통학교는 유산자 교육을 위한 곳으로 무산자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데 학교를 이전할 경우 이전 비용이 들어가 결과적으로는 무산자의 부담만 가중한다’라는 이유로 이전 반대 진정서를 제출하는 데 앞장섰다. 동년 12월에 거행한 자신의 결혼식 때 모의재판을 개최하여 주민들의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34년 7월 장용진·홍경옥 등과 함께 협재리에서 무명의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농민부·재정부·소년부·가두부(街頭部)를 설치하여 장용진은 재정부를, 자신은 소년부를 담당하였다. 각 부의 운동 방침을 명기했는데 ‘첫째, 농민부는 일제의 민간 관제 조직인 이민회(里民會)와 민풍진흥회(民風振興會)에 잠입하여 농민의 신뢰를 얻어 동지 획득에 노력하고 둘째, 재정부는 운동 자금 및 연구서적 구입 대금 조달에 노력하고 셋째, 가두부는 야구회 및 축구회를 개최하여 실업 청년을 동지로 획득할 것에 노력하고 넷째, 소년부는 소년 계급에서 동지 획득을 도모한다’라고 정한 뒤 체계적으로 독립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맡은 소년부는 이해 8월 동리 청년 수십 명을 재암천 부근 모래밭에 모이게 하여 야구 시합을 벌이는 등 동지 규합에 힘썼다. 1934년 10월 제주적색농민사건으로 검거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면서 목포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재판정에서 변호사는 피고들이 혹독한 고문으로 인하여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였다고 변론하였다.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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