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顯國
顯國1853 ~ 1909. 7. 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민긍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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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53년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소초면(所草面) 일리(日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치영(金致永)이다. 강원도 지역에서 민긍호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강원도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화서학파(華西學派) 유림, 산포수들을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다. 1907년 당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형이 선달(先達)의 직위에 있어 주민들이 따르기 때문에 의병장 민긍호(閔肯鎬)가 소모계(召募係)로 불러 의병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결문에 의하면 1907년 (음)7월 2일 원주군 문막리(文幕里)에서 의병을 모집해 의병장이 되었다고 하였다. 1907년 10월부터 독자적인 의병부대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민긍호가 사망하자 이에 분개해 이름을 김치영에서 김현국(金顯國)으로 바꾸고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음)7월 6일 의병 7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여주군(驪州郡)에 위치한 우편 취급소를 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4월에는 한상열(韓相說), 금기철(琴基哲) 등과 더불어 강원도 횡성군(橫城郡)의 일본수비대를 습격하였다. 같은 해 9월 8일 33명의 의병과 함께 원주군 신림(神林) 헌병분견소를 공격하였다. 10월 24일에는 37명과 함께 횡성군 둔내면(屯內面) 영랑리(永浪里)에서 안흥(安興) 헌병들과 교전하였다. 12월 14일에는 횡성군 정곡면(正谷面)에서 일제와 전투를 벌였다. 이후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등으로 이동하며 30여 차례에 걸쳐 일본군 수비대 및 경찰대와 교전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3월 30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수범죄(內亂首犯罪)’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09년 5월 20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5일 대심원 형사부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7월 6일 경성감옥에서 형이 집행되어 56세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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