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海龍
金海188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윤인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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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경기도 풍덕군(豊德郡, 현 개성시(開城市)) 남면(南面) 신촌(新村) 출신이다. 1908년 당시 29세로, 188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윤인순(尹仁順)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윤인순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가 강제로 퇴위되고, 같은 해 7월 24일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는 것을 보고 양주(楊州)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파주(坡州)·적성(積城)·포천(抱川) 등지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허위(許蔿) 의병부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일 항전을 전개해갔다. 윤인순은 이인영(李麟榮) 의병부대의 주도로 13도창의군이 조직되어 전개한 서울진공작전이 실패한 이후 허위를 대장으로 하고, 임진강(臨津江) 일대에서 잔류 의병들이 세력 확대를 계획할 때 허위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6월 허위가 일제에 의해 붙잡히고, 그 해 10월 형장에서 죽임을 당하자 윤인순은 부대를 이어받아 3~40명의 소규모 의병을 거느리고 다시 파주·적성·포천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이어갔다. 이때 김경록(金京錄)과 함께 윤인순 의병부대에 가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윤인순의 의병부대 수십 명과 무장하고 파주·양주·횡성 등지로 이동하며 활동하였다. 1908년 10월 파주군 파평면(坡平面) 장포리(長浦里)에 사는 일진회원 박순옥(朴舜玉)과 김봉계(金鳳季) 두 사람을 파평면 천천리(泉川里)에서 처단할 때, 김경록과 함께 정찰 활동을 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08년 11월 28일에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죄라는 명목으로 김경록과 함께 유형(流刑) 10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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