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判用
判用1887 ~ 190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7) 1887년 태어났으며,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출신이다. 영남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병탄당하는 한편, 1907년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광무황제는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빼앗겼고, 내정의 감독을 일본 통감이 담당하게 되었다. 나아가 협약의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의 내용을 통해, 일본인이 대한제국의 사법 관리에 임용되게 되었으며, 징병제에 의한 정예군을 양성한다는 미명 하에 대한제국 군대는, 1907년 8월 1일 서울의 친위대(親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시작으로 9월 3일 함남 북청(北菁) 진위대(鎭衛隊)까지 강제로 해산되었다. 일제는 1907년 9월 ‘총포 및 화약단속법’을 공포하여 한국인의 무기 소지를 금지하였고, 기존에 소지한 총포류는 반납할 것을 강요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은 이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을 봉기하였다. 이전의 의병이 주로 비전투원의 결집에 의한 비정규군의 성격을 가졌다면, 이 시기의 의병은 군인과 포수의 참여로 인해 군사 기술이 전문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지휘 체계 또한 대한제국 군제와 유사한 형태로 운용되었다. 의병부대 사이의 연합 작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장기 항전을 위한 거점과 군자금·군량미를 수급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도 힘썼다. 이러한 가운데 호남과 인접한 서부 영남 지역은 을미의병 이래 호좌의병부대와 안동 의병부대의 연대 등 의병부대 간의 연합을 기반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경남 합천군에 거주하면서, 의병 50여 명과 함께 1908년 4월 8일 합천우편취급소를 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우편소장과 직원 1명이 삼가군(三嘉郡)으로 도주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에 의해 자상을 입고 퇴각하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