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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致淵

致淵

188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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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致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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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마전(麻田)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마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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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박종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경기도 마전군(麻田郡, 현 연천군(漣川郡))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의병활동 당시 경기도 마전군 서면(西面) 묵동(墨洞)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24일 한일신협약 체결로 대한제국 내정의 감독을 일본 통감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협약의 시행령에 준하는 부수각서(附隨覺書)를 통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 해 9월 총포 및 화약단속법이 공포되면서 한국인의 무기 소지가 금지되었고, 기존에 소지한 총포류는 반납할 것을 강요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도 이 조치에 항거하여 전국 각지에서 거의한 의병부대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의병부대 사이에 연합작전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장기 항전을 위한 거점과 군자금, 군량미를 수급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이러한 가운데 기호 지역은 해산령에 불복한 군인들이 중심이 된 후기의병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고, 1908년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의 서울진공작전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1908년 (음)2월경 19세의 어린 나이로 의병장 박종한(朴宗漢) 의병부대에 합류해 장단군(長湍郡)과 마전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양총을 휴대하고 3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장단군의 여러 마을에서 활동하였으나 군자금이나 군수물자 등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의병 활동 도중 붙잡혀 1908년 8월 29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5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대심원 형사부에서 그 해 11월 10일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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