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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삼

金致三

1868 ~ 190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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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치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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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용담(龍潭)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용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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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유지명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09년 42세로 186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의병활동 당시 전라북도 용담군(龍潭郡, 현 진안군(鎭安郡)) 일서면(一西面) 성암리(星岩里)에 거주하였다. 전북 고산군(高山郡, 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운서하도면(雲西下道面) 고성리(高成里)의 유지명(柳志明)과 정성일(丁成一) 등을 비롯한 수십 명과 함께 거의(擧義)하였고,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약 2년 동안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유지명과 정성일의 지휘 아래 1907년 10월 3일 밤 용담군 읍내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그 결과 일본군 3명을 사살하고, 5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그리고 양총(洋銃) 2자루 등의 무기도 탈취하였다. 이 일로 1909년 1월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소에서 모살, 강도, 방화 등으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2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으며, 용담군 읍내 우편취급소와 세무소에 방화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무죄가 인정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9월 14일 대심원 형사부에서 최종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고, 형 집행으로 42세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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