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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철호

孟喆鎬

1889. 3. 15 ~ 1959.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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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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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龍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용인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대한통군부
  • · 대한통의부
  • · 정의부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9년 3월 15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수여면(水餘面) 김량장리(金良場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맹공유(孟公有)·맹성호(孟性浩) 등이다.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남만촉성회(南滿促成會)·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정의부(正義府)·국민부(國民府) 등의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서간도(西間島)로 건너갔다. 지안현(輯安縣)에 거처를 마련하고, 한인 사회에 융화하기 위해 단체에 가입하였는데, 그것이 친일 단체인 조선인조합(朝鮮人組合)이었다. 1918년 조선인조합 지안현 지부의 고문에 이르렀으나, 이해 11월 조선인조합을 탈퇴하였다. 이듬해 봄까지 국내에서 넘어온 의병들과 힘을 합하여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들과 함께 1919년 4월 15일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지안과 환런현(桓仁縣) 지방 지단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70여 명의 부하를 확보한 다음 친일파와 밀정 척결에 나서, 대원 유응삼(柳三)·임우방(林雨芳)과 한중 국경을 왕래하며 밀정 노릇을 하는 김원걸(金元杰)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뒀으나, 김원걸은 야밤을 이용해 도주해버렸다. 이와 함께 지안현의 고마령(古馬嶺)·대양차(大陽岔)·양수천자(凉水泉子)·유수림자(楡樹林子) 등과 환런현과 접해있는 콴뎬현(寬甸縣)의 남구(南溝)·소노안구(小老雁溝) 등지에 독립군 특파소를 설치하여, 일제 군경과 밀정의 침투를 차단하고 국내진입전의 기회를 정탐하였다. 1920년 6월 이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이듬해 4월까지 소위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이라 불리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 같은 일본군의 만행을 겪으면서 대한독립단 지안·환런 지단은 여타 독립군들처럼 북만주나 연해주로 이동하지 않고 압록강변을 주 무대로 한 항일전선을 고수하였다. 1921년 3월 대한독립총단 지안총지단장 명의로 「경고내지동포(警告內地同胞)」라는 경고장을 국내의 부호 및 친일파들에게 발송하였다. 1921년 7월에는 대한독립단 암살대 조직장에 임명되어, 암살대 본부를 지안현 유수림자에 마련하고, 젊은 대원 30여 명을 선발해 지안현 내 친일파를 척결하는 한편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민첩한 부하 대원 수명을 선발해 독립운동을 방해해 온 조선인조합 지안현 총지부장 이완구(李完求) 집을 급습했으나, 그는 도망가 버려 아들만 처단하였다. 1921년 9월 총단장인 이웅해가 독립운동의 업무를 위해 소련 연해주를 방문하자 일시 대한독립단 총단장 대리에 임명되었다. 1922년 초 대한독립단 지방조직을 총괄하는 총지단장에 임명되어, 이후 환런현 동남부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지방조직을 총괄하였다. 1922년 봄 대한독립단을 비롯해 서로군정서·광한단(光韓團) 등의 대표가 환런현에 모여 통합을 논의한 남만통일회의에 참석하여 통합 방안을 논의하고 서범선(徐範善)과 후원회 부관에 선임되었다. 1922년 8월 초 국민대표회의 개최를 위한 남만주 지역 준비기관으로 남만촉성회가 결성되자, 최석순(崔碩淳) 등 8명과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23일 남만주 지역 독립군 대표들이 환런현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를 개최해 대한통의부를 탄생시켰는데, 이웅해·이영식(李永植)과 함께 대한독립단 대표로 참가하였다. 1923년 초 통의부 의용군사령부 소속 관전의용군(寬甸義勇軍) 소대장으로 활동하다가, 12월에는 군사부 군수국장(軍需局長)이 되었다. 1924년 4월경부터는 통의부 중앙의회 부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1923년 초 복벽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의군부(義軍府)를 결성해 분리되고, 1924년 상반기에는 채찬(蔡燦)·최석순 등이 참의부(參議府)로 분리해 나가자, 1924년 6월 중앙의회 임시회의를 개최해 조직 내부 수습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어 같은 해 9월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남만대의원회의를 개최해 참의부와의 관계 설정 및 향후 진로 등을 논의하였다.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 노력은 이어져 1924년 7월 10일부터 전만통일회 회의를 개최하여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진산(李震山)·최명수(崔明洙)와 함께 이주 한인의 질서와 행정을 담당할 자치분과를 맡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해 11월 24일 통의부를 비롯해 8개 단체가 통합한 정의부가 탄생하였다. 1920년대 후반 또다시 만주 지역에 민족유일당운동이 일어나 국민부가 성립하자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괴뢰 만주국의 수립으로 항일 무장 활동이 어렵게 되자, 주닝현(朱寧縣)에서 농사를 짓다가 상하이(上海)로 옮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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