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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冀宗

冀宗

1882. 6. 21 ~ 1959.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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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柳冀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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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保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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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길림군정서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82년 6월 21일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주포면(周浦面) 관창리(寬倉里)에서 출생하였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근거지를 둔 길림군정부(吉林軍政府)의 충남 지역을 무대로 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길림군정부의 군무독판(軍務督辦) 겸 총사령관인 김좌진(金佐鎭)의 요청으로 김영진(金瑛鎭)과 조병채(趙炳彩) 등이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자 이에 참여하였다. 1921년 (음)1월 무렵 김영진이 찾아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와 길림군정부 명의의 경고서와 납금명령서 등 인쇄물 제작에 도와줄 것을 요청받았다. 같은 해 (음)3월 초순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靑羅面) 장산리(長山里)에 살며 비석조각업에 종사하는 김명수(金明秀)로 하여금 인쇄판과 도장을 제작토록 하여 인쇄 문건을 김영진에게 전달하였다. 그 중 1부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남면(南面) 대송리(大松里)에 사는 최문기(崔文基)에게 보낸 다음, 김영진과 찾아가서 군자금 제공을 요구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이들의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붙잡혔다.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공갈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4년 1월 2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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