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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녕

南昌寧

1919. 1. 9 ~ 1977.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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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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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문화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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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9년 1월 9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신양리(新陽里)에서 남재호(南在鎬)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류 가정에서 성장하여 평양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아버지 남재호는 용정리의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국민단(國民團)을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한 독립운동가이다. 이러한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민족주의 사상과 독립정신을 갖게 되었다. 1936년 3월 일본 도쿄(東京)로 건너가 사립 동경사진학교에 입학하여 사진촬영 기술을 공부하였다. 그 후 도쿄와 요코하마(橫濱)에서 영화각본 견습, 사진기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12월부터 영화의 대중성과 표현력을 이용하여 한국인의 문화향상과 민족의식을 앙양시켜 독립의 기운을 양성하고자 교토시(京都市) 소재 신흥(新興)시네마교토촬영소 촬영조수(撮影助手)로 들어갔다. 1941년 2월부터 1942년 3월까지 신흥시네마교토촬영소 연출조수(演出助手)인 김도한(金道漢) 등과 교토 시내 히로다(廣田時己)의 집 등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독립을 위해 한국인의 지적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고자 했다. 동시에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독립의식을 계몽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 고유의 풍습과 습관, 역사와 예술 등을 취재하여 민족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극영화(劇映畵)나 문화영화(文化映畵)를 제작하여 한국인에게 관람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영화 제작에 사용할 촬영 기계와 자금 조달의 방법 등을 토의하고 실행하려다가 1942년 7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1942년 10월 교토구치소에 구금되어 7개월간 장기 예심을 거쳤다. 이듬해인 1943년 6월 8일 교토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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