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암
朴鍾岩1909. 2. 5 ~ 1948. 1.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2월 5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君) 운봉면(雲峰面) 동천리(東川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초 남원 운봉지역에서 청년 운동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0년 (음)11월 안희탁(安禧鐸) 등과 함께 이발을 무료로 해준다는 명목으로 운봉지역 청소년들을 모아 운봉단발회(雲峰斷髮會, 일명 운봉이발계)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면서 동지를 규합하여 나갔다. 영업으로 얻은 이발료 수입으로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구입하고 이를 통하여 신사상을 일깨우는 한편 운동자 양성에 노력하였다. 외형상 위생 생활과 환경 개선 등을 내세웠으나 사실상 청소년에게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1931년 11월 20일 안희탁·임철호(林喆鎬) 등과 회합하여 남원청년동맹(南原靑年同盟) 운봉지부(雲峰支部)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같은 달 25일 박준상(朴準祥)과 박순영(朴舜永) 등이 가세하면서 협의한 결과 비밀결사를 만들고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조직을 6개부서로 구성하였는데 안희탁과 함께 조사부를 담당하였고, 서무부·재무부는 박종협(朴宗夾)과 안희탁, 교양선전부는 임철호·박기태(朴琪泰), 농민부는 박순영·박아지(朴阿只)·박육암(朴六岩), 소년부는 박종삼(朴鍾三)·박병규(朴秉圭)에게 각각 책임을 맡겼다. 이들과 함께 1931년 12월 10일에는 야학회(夜學會)를 개설하여 청소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관제 농촌진흥운동에 맞서 식민 지배의 모순을 폭로하는 등 적극적인 반제투쟁을 강조하였다. 특히 악질적인 지주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등 농민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불경작동맹(不耕作同盟), 소작료불납동맹, 동맹파업 등을 선전·주도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안희탁·임철호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4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7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동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