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건
朴鐘健1916. 11. 26 ~ 1988. 2.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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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916년 11월 26일 서울 종로구(鐘路區) 관수동(觀水洞)에서 태어났다. 1929년 3월경 공립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 소재 일출(日出)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6월 퇴학당하였다. 그 후 사법 대서인, 회사 사무원 등으로 일했다. 일제 강점 말기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해외 독립운동 상황을 전파하며 독립의 희망을 역설하였다. 1944년 1월 3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어우봉(魚又奉)의 집에서 니시하라(西原性澤)와 함께 모여 시국을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니시하라로부터 학도지원병(學徒志願兵) 제도에 관한 의견과 이 제도에 대한 도쿄(東京) 한국인 유학생들의 동향, 전쟁 격화에 따른 대만(臺灣)항로의 위험 증대, 해외주재 한국인과 독립운동과의 관계 등에 대해 듣게 되었다. 또한 어우봉으로부터 울릉도 항로와 강원도 강릉(江陵)에 미국 잠수함이 출몰하고 있다는 소식과 미국잠수함이 마을에 상륙해 위조지폐를 살포했으나, 일제 경찰이 이를 전부 압수하였다는 등의 시국문제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친구들로부터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한 달 뒤인 1944년 2월 초순경 전남 나주군 나주읍 동정(東町 )나주여관에서 잠시 머물고 있던 지인 박종을(朴宗乙)에게 이상의 내용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전달하였다. 또 학도병을 부추기는 모 일본 대학총장의 강연 연설을 비판하고,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있었던 학도병 행사에서 조선총독에게 “학도병으로 출전 후 우리 부모형제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겠냐”고 질문한 학생이 바로 형사에게 끌려갔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전쟁 중지와 반전(反戰)을 요구하는 삐라를 전신주에 붙인 일로 서울 시내에서 약 80명의 청년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미국에 한국인 약 1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승만(李承晩)이 그 지도자가 되어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를 세워 상당한 군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소련에도 상당한 한국인 군대가 있다는 소식을 전파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일부 있었으나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독립운동의 상황을 전파함으로써 독립의 의지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4년 8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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