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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

朴貞善

1874 ~ 192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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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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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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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조선민족대동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74년 서울 동사헌(東四軒, 현 장충동)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대 초반 북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이때부터 긴밀한 관계에 있던 이신애(李信愛)의 권유로 1919년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이하 대동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의 주도로 조직된 단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를 망라한 독립운동 단체 결성을 도모하며 이를 위해 먼저 국내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나아가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의 중국 망명과 대동단 본부의 중국 상하이(上海) 이전을 추진하였다. 대동단원들은 국내외 유력인사를 포섭하기 위해 각종 선전물을 제작하고, 부문별 대표가 주도하는 제2차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상징적으로 33인의 대표를 청년·노인·부인·종교 분야의 인물들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부인대표로 선정되어 제2차 만세운동의 준비 및 실행에 앞장섰다. 나창헌(羅昌憲)·이신애·정규식(鄭圭植) 등과 함께 1919년 11월 25일 ((음)10. 3, 단군기념일)로 거사일을 정하고 준비하였다. 이들은 이종춘(李鍾春)·김익하(金益夏) 등 노인대표가 중국요리점 장춘관(長春館)에서 「제2회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를 개시하기로 계획하였다. 시위는 3개 시위대가 선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하되, 각각 남대문 조선은행, 동대문 한일은행, 정동 배재학교(培材學校)에서 자동차를 앞세워 출발하기로 하였다. 이때 이신애와 함께 제2대를 통솔하여 시위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만세운동은 다소 지체되어 1919년 11월 28일 전개되었다. 11월 28일 오후 5경 안국동 사거리에서 시위가 전개되자 독립선언서를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독려하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벌어진 만세운동에 일제 경찰은 크게 당황하여 즉각적인 검거에 나섰다. 이 일로 붙잡혀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음에도 “하루라도 빨리 독립이 되기를 바란다”, “만세를 부르면 독립이 된다 해서 만세를 불렀다”라고 진술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5월 21일 풀려날 당시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에 무수한 청춘남녀가 고생을 하는데, 죽을 곳을 얻지 못했다”라며 의연함을 보였다. 1927년 12월 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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