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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진

文明鎭

1888. 3. 3 ~ 1978.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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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명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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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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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임시정부
  • · 용진청년회
  • · 신간회 고성지회
  • · 금강사회시설기성회
  • · 금강학원
  • · 신북면협의회
  • · 금강번영회
  • · 금강산번영회
  • · 온정리 방공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8년 3월 3일 서울 삼간동(三間洞,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서 태어났다. 1906년 1월 관립 영어학교(英語學校)를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1월 22일 판임관(判任官) 8급에 서임되어 외국어학교 부교관(副敎官)에 임명되었다. 1910년대에 대창양행(大昌洋行) 통역원(通譯員), 런던상회(倫敦商會) 사무원 등으로 근무하였다. 1914년에는 부인 이성녀(李姓女)와의 이혼 소송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런던상회에 근무하던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의 독립을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선전 활동에 투신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해 5월 13일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5월 26일 그곳에서 임시정부 요원 김보현(金甫鉉)을 만나,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외 6명의 명의로 된 「동포 2천만에게 고함」이라는 통유(通諭) 제1호 문서 100부를 건네받았다. 이 포고문에는 “임시정부는 2천만 동포에게 유고(諭告)한다. 대한 민족은 독립의 시운이 도래하였으므로 종래의 학정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 총독의 명령을 거부하고 재판에 복종하고 납세할 필요가 없다”라는 취지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1919년 5월 31일 이 포고문을 가지고 국내로 돌아와 이를 김홍작(金鴻爵)에게 건네주면서 숨겨둘 것을 의뢰하였다. 이후 김홍작은 그 중 33부를 윤혜자(尹惠子)에게 건네주는 등 임시정부의 선전 활동을 펼쳤다. 같은 해 6월 상순경 숨겨둔 포고문 가운데 13매를 다시 찾아서 서울 종로와 남대문 등지에서 위익환(魏益煥)·박용남(朴容南)·이운룡(李雲龍·김길훈(金吉勳) 등 다수에게 배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1919년 6월 14일 밤 8시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7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즉시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역시 기각되었다. 옥고를 치른 후 계속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1925년경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신북면[(新北面), 외금강(外金剛) 지역] 온정리(溫井里)로 낙향하였다. 그 사이 1920년 7월 21일부터 1개월 간 종교예배당 내 야학강습소에서 개최된 영어강습회에 강사로 참여하였다. 이후 그곳에서 경성여관(京城旅館)을 경영하는 등 사회 경제 관계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1927년 1월 용진청년회(勇進靑年會)가 운영하는 노동야학勞(動夜學)에 강사로 참여하였다. 1928년 1월 신간회(新幹會) 고성지회(高城支會)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어 선전부를 맡아 활동했다. 1930년 4월 금강사회시설기성회(金剛社會施設期成會)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온정리 유지들을 중심으로 취미 및 오락 시설을 겸비한 공회당(公會堂)과 도서관 건립, 미취학 아동을 위한 교육기관 설치 등을 위해 3만 원을 모금하여 조직한 것이다. 이후 금강학원(金剛學院)을 설립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1938년 3월 외금강공립보통학교(外金剛公立普通學校)에 통합될 때까지 회장을 맡아 운영하였다. 1935년 4월 동아일보 온정리지국 기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고성군 신북면협의회(新北面協議會)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36년 3월 9일 금강산(金剛山)과 온정리의 번영을 목적으로 금강번영회金(剛繁榮會)를 창립하고 이사로 선임되었다. 1938년 3월 6일 개최된 금강산번영회金(剛山繁榮會) 제2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10월 15일 결성된 온정리 방공단(防共團)에 고문으로 선임되었다. 1939년 1월 이후 금강산번영회 회장으로서 보석세공(寶石細工), 목기(木器) 등의 진흥을 통한 토산품(土産品) 증산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하였다. 같은 해 5월 28일 금강산번영회 제3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에 재선되었다. 같은 해 8월 1일 동아일보 외금강지국(外金剛支局) 기자를 사임하였다. 대한민국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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