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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승재

孟升在

1923. 5. 27 ~ 195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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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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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唐津)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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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수원예술호연구락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923년 5월 27일 충청남도 당진군(唐津郡) 순성면(順城面) 봉소리(鳳巢里)에서 태어났다. 1939년 3월 순성(順城)공립소학교를 졸업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그 해 7월부터 수원에 소재한 주식회사 부국원(富國園)과 수원양조회사(水原釀造會社)에서 인부로 일했다. 12월부터는 이발소에서 일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인으로 차별 대우를 받게 되어 민족의식을 각성하게 되었으며, 노동자의 삶을 통해서 계급차별 의식을 절감하였다. 부국원에서 같이 일했던 김준길(金吉俊)과의 만남이 독립운동 참여의 전환점이 되었다. 1938년 7월 수원 사립 삼일학교(三一學校)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 퇴학당한 김준길은 독립의식이 강한 인물이었다. 1939년 5월 김준길·최용범(崔龍範) 등과 함께 수원천(水原川) 저수지에서 회합을 가지고 독립운동 방략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김준길은 일본군과 일전(一戰)에 필요한 군용품을 일본 경찰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비축할 것을, 최용범은 수원 일대 농촌에서 거주하고 있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의하였다. 7월에는 수원극장에서 일본의 한인차별을 극복하고 한인이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독립 뿐이라는 홍종철(洪鍾喆)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명 받았다. 이상의 인사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독립의식 강화와 단체 결성으로 이어졌다. 1939년 10월 무렵 차준철(車濬哲)·강성문(姜聖文)·용헌식(龍憲植)·박인종(朴仁鍾) 등과 함께 수원읍에 소재한 팔달산 연무대 등에서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고자 비밀회합을 가졌다. 그리고 수원읍에 있던 차준철의 집에서 수원예술호연구락부(水原藝術互硏俱)樂(部)를 결성하였다. 결성 목적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독립 이후 사유재산제도룰 부인하고 무산자계급을 위한 공산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수원예술호연구락부 회원들은 일치단결하고 독립에 뜻이 있는 다수의 회원들을 포섭하며, 조직의 비밀을 유지하고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일본인들을 배척하기로 뜻을 모았다. 수원예술호연구락부가 결성되자, 조직원 확대를 위해 움직였다. 12월 20일경 자신의 집에서 인쇄소에서 노동하고 있던 박인종(朴仁鍾)에게 결성한 단체의 목적을 설명하고, 단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날 단원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외연 확장과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단원들을 만주국(滿洲國)에 파견하여 마적단을 결성하고, ‘김일성(金日城)’과 연계하여 한국의 독립과 공산사회를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12월 말 단원들의 논의를 거쳐, 일본에 파견하여 그곳에서 활동 중인 독립운동가들과 연계를 모색할 역할을 맡았다. 1940년 7월 상순경 수원예술호연구락부 관계자들은 만주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협의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이 자리에서 만주에서 활동할 비용과 여권 마련 방안을 협의하였다. 7월 21일에는 최용범·용헌식과 함께 수원 일대에서 양축업(養畜業)을 경영하고, 이를 통해서 마련된 자금을 통해서 무산자 아동을 수용하여 민족의식과 공산주의 사상을 고취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40년 12월 중순 차준철·홍종철·김길준 등과 자신의 집에서 회합하였다. 김준길은 현재 일본이 중국 난징(南京)과 한커우(漢口)를 점령했지만, 장제스(張介石) 정부는 충칭(重慶)에서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참가자들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김준길은 일본이 외국과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국력은 소모되어 패전할 것이며, 한국 독립은 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1년 9월 14일 수원읍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군 청년단, 수원읍 청년단 결성식에 참석하였다. 일본군에 입대하는 한인 청년들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최용범과 함께 일본은 ‘내선일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는 한인들을 기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의 반일 주장이 담긴 문건을 ‘한인 지원병’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청년단 결성식을 감시하기 위해 공설운동장에 파견되어 있던 일본 경찰들은 최용범의 행동을 보고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최용범을 취조한 후 관련자들 체포 작업에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42년 7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이상 4년 이하의 형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고 1944년 8월 2일에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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