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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金孝順

1902. 7. 2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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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효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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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재령(載寧)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재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서울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902년 7월 23일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재령면(載寧面) 향교리(鄕校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순호(金淳好)를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학생이자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견습생으로 12월 2일 서울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12월 2일 저녁 7시, 서울 훈정동(薰井洞) 대묘(大廟, 현 종묘) 앞에서 만세운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박덕혜(朴德蕙)·노순경(盧順敬)·이도신(李道信)과 함께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때 붉은 글씨로 ‘조선독립만세(朝鮮獨立萬歲)’라고 쓴 깃발을 흔들면서 20여 명의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상하이(上海) 대한민국(大韓民國) 임시정부 (臨時政府)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의 둘째 딸 노순경은 태극기를 들고 행진을 이끌었다. 이 일로 일제에 붙잡혀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8일 영친왕(英親王) 가례에 따른 특사로 출옥하였다. 1921년 3월에는 박덕혜·이도신과 함께 정신여학교를 13회로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 평의장을 맡은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이정숙(李貞淑)의 권유로 박덕혜·이도신과 함께 회원으로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하였다. 1929년에는 근우회(勤友會) 재령지회(載寧支會) 집행위원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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